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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남 독 립 운 동 의 기 록 , 1 9 1 0 ~ 1 9 4 5 Ⅱ . 경 남 독 립 운 동 , 조 직 과 활 동 경 남 독 립 운 동 의 기 록 , 1 9 1 0 ~ 1 9 4 5 Ⅱ . 경 남 독 립 운 동 , 조 직 과 활 동 28 29 밀양경찰서 폭파 < 12.17 오전 9시 최수봉 폭탄 두 개를 던져 유리창 파손. 체포> (매일신보, 1920. 12. 30.)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박재혁 의거 호외 <9.14. 의열단원 박재혁. 부산경찰 서 폭격. 서장 부상. 범인 부상.> (부산일보, 1920. 9. 14.) 「출처 독립기념관」 1919년 3·1운동 이후 의열 투쟁을 전개한 대표적 조직은 의열단이었다. 의열단은 경남 지역 의 의열 활동으로 연결되었다. 의열단 창립시기 조직원은 김원봉, 곽재기, 강세우, 권준, 김상윤, 배중세 , 서상락, 신철휴, 윤세주, 이성우, 이종암, 한봉근, 한봉인, 이낙준, 이수택, 윤치형, 황상규 등 17인이었 다. 이 중 김원봉, 김상윤, 윤세주, 이성우, 한봉근, 한봉인, 윤치형, 황상규 8명이 밀양 출신이었고, 배중세(배 동선)는 창원 출신이었다. 윤세주, 윤치형은 밀양 만세시위를 주도하였고, 배중세는 창원 만세시위를 주도하 였다. 의열투쟁 형평학우회, 형평여성회, 정위단(正衛團), 정행단(正行團) 같은 여러 성격의 하위 단체들이 생 겨나면서 참여하는 사원들의 폭이 넓어지고, 형평운동의 활동 내용도 다양해졌다. 야학강습소 설치, 신 문 읽기 권장, 주색 및 도박 금지, 풍기문란 행위 금지, 근검절약과 상호부조 등에 앞장섰다. “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의 본량(本良)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계급을 타파하여 모욕적 칭호를 폐지하며, 교육을 장려하여 우리도 참사람이 되기를 기약함이 본사의 주지이라.” 경남 고성 백정 가옥 (1914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1923년 형평사 발기인 총회 취지문 「출처 국립진주박물관, 서성호, 장성욱, 신윤호, 김진숙, 『국립진주박물관』, 2010.」 경남 진주 백정 가족 (1914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백봉산 8 천의 백정 <방해하는 자에게는 결사 태도 결의한 형평사원> (조선시보, 1923. 6. 17.)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형평사는 진주에서 1923년 4월 25일 백정들이 신분 해방을 목표로 결성하였다. 형평사는 ‘저울 (衡)처럼 평등한(平) 사회를 지향하는 단체(社)’라는 의미이며, 평등 사회와 인간 해방을 형평운동의 목표로 하였다. 형평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