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昌善牧賭稅蠲免丁氏益煥事蹟碑(창선목도세견면 정씨익환 사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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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문화원 (원장 김길수)에서는 광복 75주년을 맞아 향토문화연구소 주관으로 그동안 묻혀있던 남해출신 정익환 의병대장의 행적을 발굴하여 포상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진주문화원에 따르면 이번 사업은 추경화(향토사학자) 연구실장 주도하에 수개월 동안 정익환(남해군 창선면 출신) 의병대장의 의병 활동상과 제적등본 등 일제 때 세운 사적비를 찾았다. 정익환(1848~1919) 의병장은 경남 남해군 창선면 가인리 출신인데 이번 조사 발굴 과정에서 그동안 섬이기 때문에 의병이 나올 수 없다는 선입견을 깬 쾌거이다. 경남도 경찰부장이 경무국장에게 보고한 문서에 의하면 융희 3년 서기 1909년 9월 20일 폭도(일제는 의병을 폭도라 칭함) 수괴 혐의자 인치 관계의 건이라 보고문건에 나온다. 그 당시 지리산, 가야산 일원에서 의병들이 활동하던 때 1909년 8월 16일에 “하동헌병대 오장과 보조원 3명이 함께 출동해 폭도 정찰로 도내 남해군 창선면에 대하여 창선면의 수령으로 지목되는 정익환(전 이학당의 일부의 수괴로 현재 창선에서 神(신)과 같이 존경받는다)설이 있으므로 폭도(일제는 의병을 폭도로 호칭함)를 체포하려 할 때 주민 수 백 명이 정익환의 체포는 안된다 석방하라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헌병 오장과 보조원 3명은 총으로 의병 2명을 총살하고 의병 2명을 중상케 하고, 도주하려는 정익환을 잡아 하동 헌병대로 잡아 구금 중이다”라고 보고함. (보고서 별첨) 결국, 진주재판소에서 징역형을 받고 3년 만에 사면을 받아 석방되었다. 출처 : 경남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