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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때부터 목장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賭稅(도세)를 정해 부과하였다고 한다. 갑오경장(1894년) 때 목장은 없어졌는데도, 도세는 남아 주민드의 고충이 심했다고한다. 이를 해결하려 앞장선 이가 정익환과 동생 정무근이었다. 이들은 4여년동안 도성으로 올라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결국 목적을 관철시켜 1908년에 폐해를 없애고 말았다. 이를 기리기위한 비석이다. 정익환(1845.5~1912,2)은 본은 압해이며, 장천면 가인리 식포마을에서 정진교의 3남으로 태어났다. 무과급제로 사천의 선진진에서 파견대장으로 근무하여 정대장이란 별호를 얻었다. 4년간의 감옥생활과 7년간의 투쟁으로 도세의 면제를 받은 후에 면민들이 기금을 마련하여 송덕비를 세우려 하였으나 공이 반대하여 미루지 못하고, 사후(1940년 4월)에 창선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정대장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사적비를 세웠다. 남해신문 향우기고 백상복 작가출처 : 남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