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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 떨어지면 풍토가 다르고 백리 떨어지면 풍속이 다릅니다. 일본은 “우리 한국이 스스 로 독립할 수 없으므로 일본의 통치방식으로 우리나라 풍속을 다스리고자 한 다.”고 말하 나, 풍속은 갑자기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른바 다스린다는 것이 도리어 혼란을 일으키는 디딤돌이 될 뿐이 니,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명백합니다. 그리고 또 일본은 평화회의에서 “한국인이 오래전부터 일본에 부속되기를 원하였다.”고 주장하였는데, 한국인이 저절로 한국인이 된 까닭은 단지 그 강토와 풍속이 미리 정해졌다는 사실 뿐 만이 아니라 또한 하늘로부터 받은 본성이 그 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맞닥뜨린 한 때의 위협에 굴복할지라도 그 마음만은 장차 천만년이 지날지라도 한국의 백성임을 잊지 않을 것이니, 본마음이 살아있음을 어찌 속일 수 있겠습 니까? 마음 을 끝내 속일 수 없는데도 모든 나라가 부정하는 그들의 권리를 이용하여 온 세상 사람들 의 한결 같은 공론을 억누르려하니, 이는 일본으로서도 또한 좋은 계책이 아닙 니다. 종석(鍾錫) 등은 산야에 묻혀 지내는 사람이라 국제사정을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 다. 다만 옛 조선의 신하인지라 옛 임금부터 내려오는 풍습에 따라 유교에 종사하였습니다. 이제 온 세 계가 새롭게 거듭나는 날을 맞았으니 나라의 존망이 이번 회의의 움직임에 달려 있습니다. 나라 없이 사는 것은 나라 있고 죽는 것만 못하며, 구석진데서 스스로 말라 죽 는 것 보다 는 모든 사람이 듣고 볼 수 있는 자리에서 한 번 그 억울함을 드러내고 그 귀 추를 기다리 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생각해보니 바다와 땅의 길은 아득히 멀고 드나드는 것 마저 또한 엄하게 금 지하니 아마 갈 수도 없고 부르짖어도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아침저녁으로 어찌될지 모르는 목 숨이 도중에 쓰러지고 만다면 이 세상의 이 슬픔은 영원히 드러낼 가망이 없게 됩니다. 대표 여러분들이 아무리 현명하더라도 어찌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억울한 한국의 사 정을 꼭 헤아리길 바라겠습니까? 이에 짧은 한 장의 편지를 마련하여 여러 동 지들의 뜻을 모으고 10년 동안 받은 고통의 실정을 갖추어 하늘 끝 만 리 밖에서 대표 여 러분들께 호 소하니, 참으로 비통하고 절박하여 말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대표 여러분들은 가엾게 여겨 이를 잘 살피시고 공정한 판단의 의론을 더욱 넓혀서, 큰 광명이 두루 비치고 위대한 조화가 순조롭게 행해지도록 하면, 단지 종석 등 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을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또한 도덕이 온 세상에 펼쳐지게 될 것이며, 대표 여러분이 맡은 일도 진실로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종석 등은 차라리 함께 죽을지언정 맹세코 일본의 노예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2천만 생명만이 홀로 전 세계의 조화로운 질서에서 제외 될 수는 없습니 다. 대표여러분들은 대책과 방법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건국(建國) 4252[서기 1919]년 3월 일 유림대표 곽종석 외 136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