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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림이 파리평화회의에 보내는 글 한국유림 대표 곽종석(郭鍾錫) 등은 삼가 파리 평화회의 대표 여러분에게 글을 올립니다.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으며 만물은 그 사이에서 아울러 자라니, 큰 광명이 두 루 비치고 위대한 조화가 널리 펼쳐지는 그 이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투고 빼앗는 짓들이 일어나서 강하고 약한 형세가 나뉘고, 강제로 남 의 땅을 차 지하는 일이 행해져서 크고 작은 차이가 뚜렷해진 뒤로, 마침내 남의 생명을 해쳐가며 위 세를 부리고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제 것으로 만드는 일까지 벌어지게 이르렀 습니다. 아! 천하에 어찌 이런 일이 그처럼 많은가요? 하늘이 지금 어질고 훌륭한 대표 여러분을 보낸 것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큰 광명을 비추 고 위대한 조화를 펼쳐, 온 천하가 대동의 세계를 이루고 만물이 각각 그 본 성을 자유롭 게 누리도록 하고자 함일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나라가 평등하고 온 세계가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러한 소식을 듣고도 실제로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원통함을 품고도 공의(公議)에 호 소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나라가 있다면, 대표 여러분이 오로지 그 나라만 다르게 대하는 것이라 어찌 아니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고 달리 어떤 까닭이 있다면 지금 우리가 피눈물을 흘리며 억 울한 실정을 호소하고 고개를 들어 울부짖는 일 또한 지극히 애통하고 절박하여 참을 수 없는 심정에 서 나온 것이니, 대표 여러분은 깊이 살피십시오. 아! 우리 한국이 진실로 천하의 모든 나라가운데 한 나라로서 강토가 3천리요 인구가 2천 만으로 4천여 년을 유지하고 보전해온 반도 문명국임은 온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입 니다. 불행하게도 근래에 강한 이웃나라 일본이 밖에서 억눌러 강제로 조약을 맺고 뒤이어 국토 를 빼앗고 왕위를 폐하여 우리 한국을 세계에서 없애버렸으니, 일본이 한 짓을 대략 열거 하고자 합니다. 일본은 병자(1876)년에 우리나라 대신과 강화에서 조약을 맺을 때와 을미(189 5)년 청국대 신과 마관(馬關: 시모노세키)에서 조약을 맺을 때 모두“한국의 자주독립을 영 구히 준수한 다.”하였고 계묘(1903)년 러시아에 선전포고 할 때에도 여러 나라에 문서를 보내“한국의 독립을 공고히 한다.”고 분명히 밝혔으니, 이는 세계의 모든 나라가 다 아는 바 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온갖 못된 계략을 세워 내정에 협박하고 외 교에는 속임수를 써서, 독립이 보호로 변하고 보호가 합병으로 바뀌었습니다. 일본은 “이는 한국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라” 고 속여서 모든 나라의 공론을 면하려 하 였으니, 이것은 그 안중에 한국인이 없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는 그 마음속으로 모든 나라 또한 무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