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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잊혀져 가는 귀중한 문화유산을 발굴하여 보존함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큰 사명이자 책무라고 생각되며 민족의 수난기에 불굴의 희생정신으로 개국충절에 혼을 담아 세워놓은 숭모단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우리 고장에만 세워졌으니 대대로 충절의 고장임을 말해주고 있어 큰 자랑이 아닐수 없다. 이 비는 운석 나선생을 비롯한 애국유림과 순국선열을 추모하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자손만대까지 계승시켜 훌륭한 인재를 육성배출시키고자 힘이니 집집마다 충효예 정신을 숭상하는 살기좋은 고장으로 발전시키는데 구심점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까지 숭모단 복원사업에 특별히 관심을 경주하여 주신 장성군수님과 복원사업에 동참하여 주신 면민 여러분의 거룩하신 뜻을 후세에 전하고자 숭무돈비각복원에 즈음하여 전 면민의 이름으로 삼가 돌을 깍아 세우노라. 서기 2003년 2월 일. 전 삼서면장 송곡 나봉기 짓고, 장성문화원장 병송 이상용 쓰고, 삼서면민 일동이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