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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妓祠(의기사) 왼편에 진주 기생 산홍(山紅)의 편액이 있다. 그런데 너무 정신이 없어서 '산홍'의 편액을 그냥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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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妓祠感吟(의기사감음 : 의기사에서 느낀 바를 읊다) 千秋汾晉義 : 천년 역사에 길이 남을 진주의 의로움 雙廟又高樓 : 두 사당에 또 높은 다락이 있다네 羞生無事日 : 일없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마냥 부끄러워 笳鼓汗漫遊 : 피리와 북소리에 들떠 이렇게 놀기만 하네 本州妓 山紅(본주기 산홍: 진주기생 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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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노 이지용 1899년 경상남도 관찰사에 부임한 이은용(李垠鎔)이라는 자가 그 미녀 산홍에게 눈이 꽂혔다. 이은용은 또 누구인가. 이듬해 고종의 일곱째 아들 은(垠)이 영친왕에 책봉되자 같은 글자를 피하기 위해 개명을 한, 만고 역적 친일파 이지용(李址鎔)이다. 1905년 이토 히로부미가 서울 정동 중명전에서 고종에게 을사조약을 강요할 때, 내부대신 이지용은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학부대신 이완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내부대신 이지용을 을사오적이라고 부른다. 그때 결사반대를 외쳤던 참정대신 한규설은 옆방에 감금됐다가 파직됐다. 한규설의 사위는 군부대신 이근택의 아들이었다. 을사늑약 그날, 이근택이 귀가해 "다행히 죽음을 면했다"고 했다. 한규설 딸을 따라갔던 여종이 식칼을 들고 나와 "내 칼이 약하여 너를 만 동강이로 베지 못해 한스럽다"며 한규설 집으로 달아났다.(황현, 매천야록, 1905, 〈이근택 여비의 질타〉) 매국노와 의기의 만남 그 이지용이 나라를 팔아먹은 뒤, 절세 미녀 산홍을 첩으로 삼고자 했다. 아마 경남관찰사 시절 인연을 맺지 않았을까. "진주 기생 산홍은 아름답고 서예도 잘하였다. 이지용이 첩을 삼으려고 하자 산홍이 말했다. '내 비록 천한 기생이나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다. 어찌 역적의 첩이 되겠는가.' 이에 이지용이 크게 노하여 산홍을 때렸다."(매천야록, 1906, 〈진주 기생 산홍의 의기〉) 그 기록 아래에는 이런 시가 덧붙어 있다. '세상 사람들 앞다퉈 매국인에게 달려가 노비처럼 굽신거린다. 그대들 집에 금과 옥이 높이 쌓여도 산홍에게서는 한 점 봄도 사기 어렵다(難買山紅一點春).' 동서대 영상미디어학부 하강진 교수에 따르면, 이후 이지용은 대망신을 당한다. 그해 11월 22일 '대한매일신보'에 기사가 실렸다. '기생이 내부대신 이지용씨를 매국노라 비난하며 첩 되기를 거부하자 기생 서방이 아내를 구타했다'는 것이다.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