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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삼형제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다 박공 삼형제와 월성의병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은 북상면의 박씨 삼형제에게 도 전해졌다. 큰형인 박화기는 오랜 시간 생각에 잠기더니 동생인 박수 기, 박민기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했다. “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이 근처에서도 많은 이들이 일제와 싸우기 위 해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의병에 참 가하고자 한다.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하냐.” 두 동생의 생각 또한 큰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삼형제는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모았고, 40 여 명이 월성서당에 모여 의병을 일으켰다. 월성의병은 조직되자마자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덕유산 자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덕유산은 유격전 을 벌이기가 쉬워 병력이 적은 의 병에게 유리한 반면 대규모 병력의 일본군에게는 불리하기 때문이었다. 박화기와 박수기는 부 대를 이끌며 막사를 짓고 일본군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박민기는 후방에서 훈련에 참여하 다가 전투가 일어나면 전방의 부대를 지원하기로 하였다. 1906년 월성의병은 다른 의병부대와 함께 일본군을 기습해서 전과를 올렸고, 1907년에는 거 창읍에 있는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여 일분군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전투가 없을 때는 식 량과 무기를 모아 다른 의병부대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등 다양한 곳에서 활약했다. 유격전 정면으로 부딪히기 보다는 적의 빈 틈을 노려 기습하는 형태의 비정규 전투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