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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거창교회 목사 시절 그의 항일 의식을 잘 드러내는 일화가 있다. 조선 총독부 고위 관리가 거창을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그를 맞이 하기 위해 거창 지역의 종교 지도자, 지역 유지 등이 동원되었다. 총 독부 관리는 많은 이들 앞에서 “총독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야기 해 보십시오.”라고 말하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총독부 관리의 모습에 눌려 모두가 침묵을 지킨 가운데 주남선 목사가 입을 열었다. “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그만 괴롭히고 한국을 떠나주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주남선 목사의 기세에 눌려 총독부 관리는 얼굴이 붉어지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신사 참배를 거부하며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켰던 주남선 목사였기에 일제가 그를 싫어했던 것은 당연했다. 일제는 교회와 지역 사회에 압력을 넣어 그를 무임목사 로 물 러나게 했다. 무임목사가 되었음에도 그는 진주, 합천, 함양을 비롯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 며 신사 참배를 반대하는 설교를 계속했다. 그러나 신사 참배를 반대한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신사 참배가 곧 항일 운동의 성격 을 갖는다는 이유로 일본 경 찰에 붙잡힌 그는 해방 전까 지 미결수 생활을 해야 했 기 때문이다. 언제 죽을지 모 르는 불안한 감옥 생활 속에 서도 그는 다른 수감자들에 게 기독교적 가르침과 항일 의식을 전파해 나갔다. 주남 선은 1990년 건국훈장 애국 장을 받았다. 출옥한 뒤의 주남선 목사(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 무임목사 소속 교회가 없는 목사. 대부분 교단 에서는 무임 목사 상태가 일정 기간 계속되면 목사 자격이 사라짐. 미결수 재판을 통해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감옥에 갇혀 있는 피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