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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독립운동 이야기 305 파리장서가 각국의 신문을 통해 전 세계에 발표되어, 조선에 대한 일제의 탄압과 조선 사 람들의 독립에 대한 염원을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국제 사회의 반응은 생각보다 차가웠고, 많은 유림들이 일제에 붙잡히게 되었다. 이 소식은 상하이에 머물고 있던 김창숙에게도 전해 졌는데, 김창숙은 실망하지 않고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또 다른 형태의 항일 운동을 고 민하며 기회를 엿보았다. 1925년, 곽종석의 문집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은 김창숙은 이를 국내로 돌아갈 기회라 생각했다. 곧바로 귀국한 김창숙은 국내의 유림들을 다시 만났고, 일제의 힘이 닿지 않는 곳 에서 군대를 기르고자 하는 자신의 계획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신건동맹단’이라 는 비밀 결사를 만들어 군자금 모금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를 파리장서사건(1차 유림단 사 건)에 이은 ‘2차 유림단 사건’이라고 부른다. ‘2차 유림단 사건’을 이끈 김창숙 유림독립기념관 유림독립기념관 내부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