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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 가조면의 만세 시위는 22일에도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김호를 중 심으로 만세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김호는 조카로부터 서울에서 의 3·1 만세 운동 소식을 듣고 곧바로 집안사람들을 동원해 만세 시 위를 준비했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함께 할 것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주변의 신고로 일본 경찰들이 사전에 시위 계획을 알아차리게 되면서 김호를 비롯한 주도자들이 체포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학정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꺼져가던 만세 시위의 불씨 는 기적처럼 다시 타오르게 되었다. 어느덧 3,000여 명의 시위대가 형성되었다. 시위대는 앞 선 만세 시위에서 붙잡힌 사람들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면서 거창읍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 다. 이에 질세라 일제는 주재소의 일본 경찰과 헌병 기마대까지 동원하여 살피재 에서 시위 대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298 살피재 가조면과 거창읍을 이어 주는 고갯 길이다. 시위대가 거창읍으로 가려 면 이곳을 꼭 통과해야 했다. 만학정 1919년 3월 22일 가조면 만세 시위가 시작된 역사적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