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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휘는 항복이요 자는 자상이고 호는 백사이며 본관은 경주이다. 신라초 급양부대인 갈평을 시조로 계손 연면영달하여 고려조에 더욱 융성하였으니 익제공 휘 제현국당공 휘 천 상서공 휘 과등이 문한과 도덕으로 명문의 기반을 다졌다. 조선조에 들어와 공의 5대조 휘 연손 공조참판 고조 휘 숭수 지중추부사 증조 휘 성무 안동대도호판관 조 휘 례신 성균관진사 증의정부좌찬성이며 고 휘 몽양은 우참찬 증영의정시심부원군이고 비는 전주최씨 결성현감 윤의 여로 정경부인에 추증되었다. 공은 명종 병진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기골이 준수하고 재질이 뛰어나 8세에 이미 시를 지어서 이름을 드날리었다. 선조 7년 권상국철의 손녀요 도원수 권율의 따님과 결혼하였으며 동13년 경진에 갈성병과에 등제하였다. 여러 벼슬을 거쳐 예조정랑직으로 있을때 마침 정여립의 모반이 일어나 와이 국문하는 자리에 공은 문사랑으로 입시하여 옥사를 훌륭히 다스렸다. 그 공으로 평란삼등공신이 되고 전한에 승진되었다. 공이 도승지로 있을떄 임진란이 일어났다. 조야가 혼란에 빠져 급기야 선조가 서행길에 올랐다. 도중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공의 예지로 무사히 임진강을 건너 개성에 도착하였는데 이떄 공은 이조참판 이성군을 배하고 가선대부에 가자되었다. 평양에 당도한 후 특지로 형조판서겸 오위도총관에 발탁되고 다시 병조판서겸 춘추관 지사세자좌부니객에 제수되었다. 전세가 불리하여 도성이 이미 함락되고 임진강에서도 패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