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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유래 청량산은 원래 수산(水山)으로 불렀다. 왜 수산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리적 요인에서 그 연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수산'이라 부르게 된 것은 아마도 낙동강이 산 앞을 가로지르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아니면 퇴적암으로 형성된 이 산에 물이 별로 없어ㅅ 그 반대급부로 수산으로 명명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한때 퇴계 이황도 도산서원의 위치를 정할때 고심한 적이 있는데 청량산에 물이 없다는 이유로 서원을 현재의 도산서원 자리로 정했다고 한다. 청량산이 수산이었다는 사실을 뒷밭침하는 최초의 문헌자료는 '동문선' 이다. 동문선에는 고려시대에 국사로 활동했던 천인의 시가 실려있다. 천인은 치원암 주지가 자신의 시를 보여주면서 청량산 고사를 기록해 주기를 요청하자 이에 회답한 시(致遠庵主以詩見示 仍以請予紀山中故書 次韻答之)에서 청량산을 수산으로 명명했다. 청량산의 옛이름이 수산이었다는 사실은 최근 발견된 관련 유물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실제로 1998년 안도대 안동문화연구소에서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수산청량사'로 추정되는 명문기와(산청량山淸凉이라는 명문이 새겨짐)가 수습되었다. 따라서 천인이 고려시대 승려라는 사실과 수습된 기와의 편년이 고려시대를 상한으로 조선전기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점을 종합해 볼 때 적어도 조선전기까지 청량산은 '수산'으로 불려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면 수산에서 청량산이란 이름으로 명칭이 변경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이것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도출해 내기는 어렵다. 다만 청량산과 관련된 문헌과 출토 유물들을 중심으로 대략적인 연대를 추정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다행히 구한말에 출간된 청량산 관련 지리지에서 '수산'이라는 명칭을 확인할 수 있어 연대비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901년에 출간된 역사 지리지 '오가산지'에는 '청량산은 재한현 남쪽에 있는데, 옛 이름이 수산이었다. [淸凉山 安東邑誌 在才山縣南 古名水山]'라는 기록이 있다. 또한 주세붕을 필두로 조선중기부터 출간된 수많은 유산록을 살펴보면 수산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고 모두 '청량산'으로 통칭되고 있음을 파악할 수있다. 따라서 천인의 시와 앞서 언급한 기와편의 번와연대를 문헌자료와 더불어 종합해 보면 청량산으로의 명칭변경은 고려 말에서 조선전기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천인의 시와 앞서 기와편의 번와연대를 문헌자료와 더불어 종합해 보면 청량산으로의 명칭 변겨은 고려말에서 조선존기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