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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서기1939년 11월 제령 제19호로 조선민사령을 개정하고 서기 1941년 2월 1일부터 동년 8월 11일까지 조선총독부가 관헌을 총동원하여 말과 글로 밝힐 수 없는 만행으로 조선국민 사천만 씨족의 고유성명을 일본 황국민식 씨명으로 창씨개명을 강행한 것은 세계역사상 초유의 민족과 씨족사관을 말살한 역사적 사실로 이는 국가를 강점 당한 역사이므로 잊어서는 아니될 치욕사이다. 이때 이곳 山垈(산대, 신개울)에 세거한 柳蘊(류온)의 7세손 병욱의 자 효석과 병호의 자 효준,효영의 주도로 문화유씨 친족은 유일한 창씨개명을 집단 거부함으로 형언할 수 없는 수모와 탄압의 수난으로 인적 심적 물적 피해가 겹친 고통을 받아 원인불명 사망인 4명 실종 3명 피해인 119명이고 문화유씨 세보간행 판각본 종중 장서 방화 소실 주도자 선영 비명 파괴 취진학 불허 강제징병용 식량배급제외 등을 겪고 당하다 8.15해방을 맞았다. 서기 1945년 8월 15일을 기하여 퇴거한 일본은 조선국민의 창씨개명은 조선인들이 원해서 시행하였다고 반성없이 망언을 하고 있어 이를 반증하고 창씨개명을 집단 거부한 정당함을 확실히 밝히고자 뜻을 모아 사적비를 세운것이니, 후세인 모두가 망국 민족의 비애와 통한의 역사를 잊지말고 국가와 민족정기를 수호하는데 성심 진력할 것을 간곡히 권고하면서 삼가 호국선열님의 영안 하심과 명복 하심을 심심 기원하노이다. 서기 2011년 월 일 유흥 고증 찬서 산대리발전추진위원회 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