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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여성의병 양방매(梁芳梅, 1890~1986) 호남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한말 의병장 가운데 한 사람인 강무경(姜武景,1878~1910)의 부인으로 18세에 남편을 따라 항일전에 뛰어들었다. 전북 무주 출신인 강무경이 심남일과 함께 전남 함평에서 의병을 일으킨뒤 1908년 영암으로 왔을때 영암군 금정면 선비 양덕관의 집에서 생활한 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하였다. 양방매는 양덕관의 6남매중 둘째 딸로 큰 오빠였던 양성일(梁成一)도 20세 청년으로 의병에 가담했다. 일본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영암을 떠나게 된 강무경이 여자가 따라나설데가 아니라며 집에 남을 것을 권유했으나,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남편,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겠다"며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강무경을 따라 항일전을 펼쳤다. 이듬해 1909년 10월 전남 화순군 능주면 바람재 바윗굴에서 남편과 함께 일경에 체포될 때까지 1년동안 양뱅매는 남편부대의 일원으로 장흥,보성,강진,해남,광양 등 전남 동남부 일대 산악지방을 무대로 유격전을 전개했다. 특히 1909년 3월 8일 강무경 의병이 남평 월교리에 머물다가 일본군 15명이 운곡으로 갔다는 보고를 받고 작전을 세운 다음 본진을 장암에 두고, 의진을 5개 부대로 나눈 후 대치,대항봉,월임치,덕룡산,병암치 등지에 매복시켜 놓고 유인작전으로 협공을 벌여 다수의 일본군경을 사살하는 등 큰 전과를 올린 남평의 거성동전투가 벌어졌을 때, 직접 참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1909년 9월부터 일제가 이른바 남한 대토벌 작전을 벌여 호남의병에 대해 파상적 탄압을 하면서 10월 9일 강무경과 함께 체포되어 강무경은 1910년 10월 4일 심남일과 함께 대구감옥에서 순국하였고, 양방매는 어린 여성의 몸이었기에 석방될 수 있었다. 열네살 위인 남편을 먼저 보낸 양방매 선생은 70여 년을 금정에서 숨어 살다시파하다 1986년 9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95년에 국립현충원에 남편과 합장됐으며, 정부는 여성 의병 가운데 처음으로 2005년에는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곳은 양방매 의병이 돌아가실 때까지 숨어 사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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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무주군 나제통문 의병장 강무경동상, 항일투사 순국의병장 강무경,양방매 부부사적비, 강무경 생가 탐방앨범도 같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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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화순군 화학산 바람재 심남일의병장,강무경,양방매의병 체포지 은거지 표지석 탐방앨범도 같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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