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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관은 함양이요 휘 석준 자 응홍이며 호가 물와다. 시조 시 문도공 휘 광휘는 고려때 정란과 북벌에 공을 세워 함양부원군에 책봉되고 6세 임강공 휘 儼(엄)은 충청관찰사요 11세 문월공 휘 극성은 임란때 황간현감 재임중 창의한 선무공신이며 12세 우재공 휘 瀷(익)은 병자호란의 치욕에 격분하여 복수지책을 상소하며 돈세한 숭정처사다. 조고 휘 정구는 약산헌을 짓고 학문에 정진하면서 지효독우하고 낙선호의하던 분이며 보비 안동권씨는 인재대기의 후로 여중군자란 칭송을 받았다. 고 이재공 휘 세녕은 백중씨 두분과 더불어 전문약례를 실천했고 비 의성김씨는 청계진의 후다. 선생은 단기4209년 11월 24일 3남1녀중 셋째로 태어나 총명하고 호학해서 경서에 통달했고 백형 회와공 휘 석기로 부터 전래가법을 익혔다. 경술국치를 당하자 도산서원 수학시 스승 자헌대부 이만도가 분사하고 안중근의사의 의거에 충격을 받아 의거찬동문을 발표하여 피금되었다. 그후 이강욱 홍명성 유동수 지사들이 찾아와 파리장서등 시국을 논하자 구국의 선봉에 설 것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