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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준(吳錫浚)은 경상북도 영양(英陽) 사람이다. 1919년 3월 25일의 영양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21일 안동군 임동면 편항(安東郡臨東面鞭巷)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주동했던 유동수(柳東洙)·이강욱(李康郁)·홍명성(洪明聖) 등이 이곳으로 와서 입암면 대천동(立岩面大泉洞) 이원오(李元五)의 집에 모여 비밀회합을 갖고, 3울 25일의 영양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기로 결의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곳 일본군 헌병분견소에서는 3월 25일의 독립만세시위 계획을 미리 알고 이날 아침부터 읍내로 들어오는 4개의 입구에 군경을 배치시키고 삼엄한 경비를 하였다. 이날 낮 12시 30분경, 각지로부터 6백여명의 시위군중이 10∼20명씩 무리를 지어 영양읍내로 들어왔다. 이에 일본 군경은 읍외의 2,5km 지점에서 일일이 신체 검색을 하여 되돌려 보내려고 하였으나, 대부분의 군중은 이를 뿌리치고 읍내로 들어와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날 그도 일본 군경의 만류를 뿌리치고 읍내로 들어와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자 일제는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한 시위군중 중 167명을 금융조합 창고에 가두고 개별적으로 조사한 후 모두 방면하였는데, 오직 그만은 주동자로 검거되어, 이해 5월 19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