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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승당 유허비(制勝堂遺墟碑) 어허 여기는 이 장군 순신의 제승당 터다. 바로 그가 이 집에 앉아 지휘하고 호령할 제 천지 귀신도 그 정성을 굽어보고 바람 구름 번개 비가 그의 응변 술책을 도와 왜적들이 바다에 깔려 날뛰면서도 이 집 밖에서만 웅성거리지 차마 감히 가까이 다가들지는 못했던 것이니 어찌 그리 장하시고 이제 다시 수백 년이 지나 주춧돌은 옮겨지고 우물과 부엌마저 메워졌건만 아득한 파도 너머 우거진 송백 속에 어부와 초동들은 아직도 손가락으로 제승당 옛터를 가리켜 주니 백성들은 이같이 오래도록 잊어버리지 못하나 보다. 슬프다. 옛날 주(周)나라 소공(召公)이 막을 잠깐 쳤던 자리라고 거기 나는 아가위나무(甘棠) 한 가지도 베지 말라는 노래를 지어 읊조리거늘 사직을 바로잡고 우리 창생을 살리심이 그 누구 힘이관대 차마 이 터에 풀이 우거져 있게 할까 보냐. 세월이 흐르고 역사가 지나가 차츰 더 아득해지면 저 어부와 목동들마저 집터를 잊어버려 물어볼 곳조차 없어질는지 그 또한 누가 알리요. 그래서 이제 통제공(統制公) 조경(趙儆)이 흙을 쌓아 터를 돋우고 돌을 다듬어 비를 세우는 뜻은 실로 여기를 표해 두자는 때문이라. 어허 인제는 천하 만세에 여기가 이 장군 집터였던 줄을 알게 되리라 이제 군자 이르되 통제공 조경은 과연 능히 임금을 섬기는 분이라 하리니 그 어른(忠武公)을 사모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 비를 세울 것이며 진실로 사모하는지라 반드시 본받을 것이며 진실로 본받는지라. 반드시 충성되고 의로울 것이며 충성되고 의로운지라. 임금을 섬길 따름 다른 무엇이 있을까 보냐. 여기 비를 세우고 글씨를 쓴 이는 통제사 조경이요 글을 지은 사람은 도사(都事) 정기안(鄭基安)이다. 제승당 유허비는 한문으로 되어 있으므로 박정희 대통령각하의 분부를 받들어 한문을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비문을 국역한 한글비를 따로 세워 후세에 전한다.. 1979년 12월 이은상 국역, 고동주 씀, 경상남도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