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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충무공이 세도수군을 통제하실때 뭍에 오르면 여기 계셨다. 헐어지고 다시 세고 몇번이라 바로 그 집은 아니나 누구나 눈속 마음가운데 제승당이 희미하야 진적이 없으므로 삼백여년이 지잔 오늘에도 계실제 그 곳을 그대로 그리어 나려왔다. 비에 삭여 전한 바도 있거니와 비 아니라도 두렷하다 거의 부셔지던 나라를 혼자 붓드시니 리충무공은 한민족의 목숨이셨다. 해상작전을 지휘하시던데가 여긔요 적을 지치어 큰 공을 세운 이들을 상 주시던 데가 여긔요 밤이 새도록 걱정으로 못주무시던데가 여긔다. 저 퍼런 바다나 멀고 가까운 섬과 산이나 그때의 그것이오 오고가는 해오리까지라도 그 때에 보시던 것과 달지아니하려니 여긔서 리충무공을 생각하라 친히 뵈옵는 듯도 하니 그 동안 이 땅이 욕우에 있은지 사십년이 넘었다. 그때 적을 물리치시던 매운 긔운이 은연한속에 우리나라를 버틔신지라. 옛강토가 차례로 우리손에 도로게 되얐다. 끼치신 비 이러하시니 잠시 뱃그림자가 치었던 물가의 나우가 있다 할지라도 다땅히 받들어 직히려든 이 제승당은 중하기 저러하니 옛비 하나만에 부족하야 다시 이 돌을 사기는 것도 그러할바요 또 중소학학도들이 힘을 모아 이 일을 하니 알음이 계시면 긔특다 하실만 하다 알라터도터이려니와 리충무공의 마음을 직히라 차져놓으신 삼천리를 하로바삐 한덩어리를 만들어야 할것을 우리도 산 바다에 맹서하자 대한민국 삼십년 십이월 일 뎡인보는 짓고 김충현은 쓰다 경상남도 정의발의로 전도중소학학도가 힘을 모아 마산석공장에서 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