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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삼의 장례 일송 김동삼(金東三, 1878~1937)은 이회영, 이시영, 이동녕 등과 함께 서간도에 경학사와 신흥강습소를 세우고, 항일 무장단체인 서로군정서 참모장을 맡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진행했다. 김동삼은 일제의 만주침략 직후 항일 공작을 위해 하얼빈에 잠입했다 체포되었다. 이후 국내로 이송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37년 4월 경성형무소에서 사망하였다. 총독부의 눈이 두려워 김동삼의 시신을 아무도 찾아가지 않자, 한용운이 시신을 수습하고 심우장에서 5일장을 치러주었다. 김동삼의 장례에는 조한영, 조지훈 부자 이외에 여운형, 이원혁, 홍명희, 방응모, 김혁, 이병홍, 이극로, 이인, 박광, 김적음, 허헌, 허영호, 등이 참석하였다. 한용운은 옥중에서 나긴 김동삼의 유언에 따라 유해를 화장하여 한강에 뿌렸고, 한용운은 김동삼의 영결식에서 "유사지추(有事之秋:독립)을 당하여 나라를 수습할 인물이 다시없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이니 비통하다."고 하며 크게 통곡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신문기사에서는 일송 김동삼의 장례식장으로 성북동 심우장으로 안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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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부사건(正義府事件)으로 복역 중에 경성형무소에서 병사한 일송 김동삼의 장의는 오는 18일 오전 10시에 시내 성북정 220번지 한용운씨 댁에서 발인하여 신흥사 화장장에서 다비에 부칠터이라는데 영결식장도 한용씨 댁이라한다. 조선일보 1937년 4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