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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금 등을 조달하여 정남국 이월송 기외 동지를 통해서 상해임정으로 전달하였으며 1919년 3월 일 일제는 신지사립학교를 폐교함으로 박아지 강경환 양선생을 완도사립중학교로 전입하였던바 본교도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1926년 9월 일 폐교령으로 종식을 고하게 되였으며 일제는 통제경제령으로 탁주양조장까지 통폐합함에 선생은 1940년 7월 일 광주로 퇴거 1950년 6월동란으로 영식 백현군은 행불하고 차자 평현군은 광주에서 생활중이며 선생은 세수 74를 일기로 승피백운에 제향으로 도라가시다. 본 석물은 현재 완도읍 군내리 거주 신지출신 김후근씨로 하요금 선생의 공적을 유구불망하기 위하여 각석 수립하다. 서기 1988년 8월 일 완도 석호 배규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