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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민(李榮珉)의 초명은 희수(熙守), 호는 취산(醉山)·벽소(碧笑)이며, 현 순천시 상사면 출신이다. 김광렬에게 수학하였으며, 한학과 서예를 배웠고,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06년 순천에 야학을 개설하여 후학을 교육하였고, 1910년 박승휘와 함께 순천남학당[현 순천남초등학교] 교원으로 재직하였다. 1917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1919년 귀국 후 순천 지역에서 청년회 활동 및 농민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다 옥고를 치렀고, 『동아일보』 기자로도 활동하였다. 또한 우석(友石) 김종익(金鍾翊)[1886~1937]과 판소리 창자를 비롯한 예술가들을 후원하였다. 저술로 130여 수가 수록된 『벽소시고(碧笑詩稿)』가 있다. 『벽소시고』에는 부록으로 『청구악부초(靑邱樂府抄)』가 실려 있다. 여기에는 판소리 「춘향가」의 내용을 장편 한시로 만든 「옥중화가(獄中花歌)」 및 「근대국악계인물(近代國樂界人物)」조에 송만갑(宋萬甲)·이동백(李東伯) 등 41인의 판소리 명창을 소개하는 한시가 수록되어 있다. 출처 : 디지털순천문화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