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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무명용사위령비. 1945년 8월 15일 오전 10시! 우리고장 녹산동 장락포 모롱이 산 중턱에서 왜놈 헌병에게 쫓기던 일본군 소속 조선청년이 투신하여 죽음을 택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가덕도에는 외양포에 일본 육군 포대가 있었고, 천성과 등대쪽에는 일본 해군이 그리고 성북동 쪽에는 일본군 육전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 중 어느 부대의 소속인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청년 한 사람이 야밤을 이용하여 병영을 탈주, 10리 바다를 헤엄쳐 건너서 새벽녘에 송정 바닷가 석축(염전뚝)에 닿아 방근, 화전, 녹산 마을을 지나 성산2구의 한 민가에 들러 밥을 달라하여 허기를 면한 후 일본 헌병이 추격해 오고 있음을 알고 다급히 강변(서낙동강) 길을 따라 달렸으나, 부치는 기운과 들리는 총성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장락포 모랭이 산기슭 절벽으로 올라가서 총을 쏘는 일본병과 대치하다가 '대한독립만세'를 세 번 목이 터져라 크게 부르고 그 절벽에서 떨어져 장열하게 죽음을 택하고 말았다. 그때의 시간이 오전 10시! 그 시신은 거적에 덮여 헌병들의 들것에 실려 어디론가로 가버렸다. 그 시간 그 곳을 지나던 지역주민들 다수가 현장을 목격하고도 어쩔 도리가 없었던 그 때의 상황을 그들의 입으로 전하여 오늘에는 전설과도 같은 안타까운 이야기로 남게 되었다. 그 청년의 고향도, 성도, 이름도 모른 채...!! 이에 산화한 그 분에게는 미안하고, 일본군 헌병에게는 분노를 또 한 번 느낀 수많은 이 곳 지역민들은 이제는 그냥 넘길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늦었지만 구천을 헤매고 있을 그 영혼을 위로하고, 추모해야 한다는 뜻있는 지역 주민들과 본 녹산향토문화관에서는 '항일무명용사위령비'를 세우고 해마다 광복절에는 위령제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