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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한통의부 조인현과의 운명적 만남 ∙ 71 내세워 이듬해인 1924년 6월에 통의부를 떠난 것이다. 몇 달 뒤 통의부가 정의부로 전환된 것은 바로 이런 흐름의 연장이었다. 이상의 전개과정을 얼핏 보면 참의부 성립의 발단이 통의부 내의 분열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 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겉모습의 내부를 좀 더 들여다보면, 개조파의 쇄신 요구 때문에 정치적 어려움 에 처해 있던 정부옹호파들이 개조파가 지도부로 있는 통의부 내 의용군 세력의 불만을 이용해 상호 분열을 획책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명분과 입지를 강화하려 했던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원인이 야 어떻든, 이후 전개과정에서 만약 정부옹호파가 임시정부의 주도권을 계속 장악했다면 참의부 또 한 임시정부의 직속 군대로서 그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밀월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24년 12월, 반(反) 통의부 입장을 견지하며 자신들을 지지해 온 임시정부 이동녕 내각이 예상치 못한 정국의 변화로 인해 총 사퇴를 했기 때문 이다. 그리고 이들을 대신해 임시정부를 장악한 세력은 개조파였다. 1925년에 개조파는 이승만을 대통령에서 해임하고 박은식을 제2대 임시대통령으로 선임했고, 박은식은 임시정부의 대통령제를 내각제로 바꾼 후 중망이 높던 남만주의 이상룡을 국무령으로 추대하였다. 이상, 임시정부와 참의부의 관계를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한 것은 바로 조인현의 대한통의부 조직 활동을 해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박영관을 포함한 조인현의 통의부 단원들은 몇 년에 걸쳐 전라 남도 지역에서 모집한 군자금을 모두 상해 임시정부로 송부하였다. 그런데 정부옹호파가 임정을 장 악하며 참의부를 산하 조직으로 두고 있었던 기간은 불과 6개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 기간을 제외한다면 국내 통의부 조직과 임시정부가 상호 소통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참고 로, 국내 여러 항일조직들이 모집한 군자금이 정확히 어떤 경로를 통해 어느 곳으로 전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확실한 자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좀 더 투명하게 밝혀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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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창단원 정기환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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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의창단원 정기환의 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