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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박영관의 출소 이후 행적 ∙ 131 내주고 말았다. 박영관이 천신만고 끝에 찾아 모신 부모의 묘소는 현재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의 거석마을(擧石洞 ) 앞쪽 산기슭이다. 변산반도국립공원의 내변산 우측에 자리잡은 이곳은, 서남쪽으로는 그 유명한 내 소사가 있고 동북쪽에도 역시 천년고찰 개암사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실학자 유형원(柳馨遠)이 반 계수록(磻溪隧錄)을 쓴 우반동(愚磻洞)이 자리잡고 있다. 변산은 흔히 내로라 하는 풍수가들이 즐겨 말하는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한 곳이다. 묘역이 자리한 거석마을 앞산은 산과 물이 어우러져 태극 모양을 띄고 있는, 이른바 ‘산태극수태극(山太極水太極)’ 지형이다. 올려다보이는 바위는 얼핏 10분 남짓이면 올라갈 듯하지만, 막상 걸어보면 한참을 에둘러 1시간은 족히 걸린다. 이곳 바위 안쪽으로 묘를 쓰려면 천상 맨바위 위에 약 4m 높이로 2단 석축을 쌓아야 했다. 이때가 대략 1970년대 초반 이었으니, 당시에는 포크레인을 쓸 수도 없었기에 순전히 사람 힘으로 돌을 지고 막무가내로 산 위 를 올라야 했다. 인력과 비용은 차치하더라도 그 치밀함과 정성으로 빚은 공력을 생각해보면, 가히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우직함이요 갱장지모(羹墻之慕)의 효성이라고 하겠다. <박영관 선생의 부모 묘소를 찾은 후손들(1981)> 추원묘역 조성 사업은 박영관의 사후에도 그 자손들이 계속해서 힘을 보태어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묘소를 쓰긴 썼으되 분묘를 수호하고 성묘도 다녀야 하는 자손들 입장에서는 1시간을 등산해야 올라갈 수 있는 조상묘가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다시 이장을 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던 것 같다. 하지만 박영관의 장남 박춘회는, 설령 산을 올라 성묘를 못하고 멀찍이 아래 평지에서 우러러 절을 올리더라도 결코 묘역을 옮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다. 이는 명당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다는, 선친께서 각고의 심정으로 10년을 찾아 조성한 묘역을 함부로 옮기 는 것이 자식된 도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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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및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