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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한통의부 조인현과의 운명적 만남 ∙ 57 ① 3.1운동 이후 만주의 상황과 독립운동 정세 3․1운동으로 민족적 저항의 잠재력이 폭발하고,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로 국제정세도 유리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만주지역의 한인 독립운동 단체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 준비한 투쟁역량을 발휘 할 때가 다가왔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리고 이에 더해 당시 만주지역의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현상은 1920년대 독립투쟁을 수행하는 데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첫째, 1910년대 초부터 지속적으로 양성한 한인자치기구의 독립군 단체가 1910년대 말에 이르러 한 단계 높은 근대적 무장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한인 독립군 부대들은 러시아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 간 대립의 와중에서 해산된 연해주 지역의 러시아부대로부터 반출된 다수의 무기를 구입하여 무장역량을 한층 강화시킬 수 있었다. 또한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귀국을 기다리고 있던 연해주 지역 체코 군대로부터도 무기를 구입할 수 있었다. 무기구입 자금은 1910년대 한인사 회 자치기구와 이주 한인들의 헌신 덕택이었다. 특히 만주지역 한인들의 경제력을 향상시킨 주 요인 은 성공적인 쌀재배농법 개발에 있었다. 이와 함께 1차 세계대전 중 만주지역 특히, 동만주 지역에 서 유럽으로의 대량 잡곡 수출이 가능해졌고, 이로 인한 한인사회의 경제력 향상 또한 독립운동 군 자금을 마련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둘째, 3․1운동을 전후하여 독립군의 인적자원이 한층 풍부해졌다는 점이다. 3․1운동 직후 해외 독 립운동을 위해 수많은 우국 청장년층이 만주로 건너왔고, 만주지역에서의 벼농사 개발로 1910년대 후반부터 한인 이주민이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국경을 넘은 청장년층은 물론, 경제적 이유로 이주한 한인 농민들 또한 병농일치의 투쟁을 기본 전략으로 하는 한인 독립운동단체 에게는 모두 잠재적 자원이었다. 이처럼 이주 한인의 양적 확대는 독립운동역량을 강화하는 데 주요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셋째, 일제강점 이전 한말 의병항쟁 시기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실전 전투경험을 쌓은 병력들이 충원되었다는 점이다. 1909년 9월부터 2개월 간에 걸친 일제의 남한대토벌작전으로 국내 의병 진 용은 거의 와해되고 말았다. 이에 잔여 의병세력들은 새로운 항일투쟁기지 구축을 목적으로 만주와 연해주지역으로 대거 이동하였다. 이들은 강인한 실전 투쟁력을 바탕으로 즉시 독립전쟁에 투입될 수 있는 핵심 자원이었다. 이런 긍정적 분위기 속에서 분출한 3․1만세운동은 만주지역 한인 독립운 동 단체들에게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3․1운동으로 민족적 저항의 잠재력이 폭발 하고,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로 국제정세도 유리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준비한 투쟁역량 을 발휘할 때가 다가왔다는 분위기가 한껏 조성되었던 것이다. ② 대한통의부는 공화주의 원리에 따라 결성된 조직 일제 강점기 민족주의자들은 국내외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항일운동을 벌였다. 그들은 비록 활동 공간이 달랐지만 대체로 독립전쟁론에 입각하여 활동하였다. 독립전쟁론이란, 첫째 우리 민족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