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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 송와 박영관 선생 사적 <도마리아 선교사 초상과 도마리아의 육필원고를 엮은 책(2015)> 앞서 소개한 타마자 선교사는 도마리아보다 3살 아래인데, 그녀보다 2년 먼저 광주에 와서 1915 년에는 숭일학교 3대 교장을 역임했다. 따라서 필자는 이 두사람이 ‘숭일’과 ‘수피아’ 두 학교를 매 개로 매우 돈독한 사이였고, 당연히 도마리아 선교사는 타마자의 제자이자 숭일학교 농감인 송흥진, 송흥진의 제자이자 숭일학교 졸업생인 송주일과도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고 생각된다. 그런 도마리 아 선교사가 고창의 무장리교회를 설립한 날짜는 공교롭게도 3.1운동의 발발로 정세가 긴박했던 1919년 3월 3일이었다. 일주일 뒤인 3월 10일, 송흥진과 송주일은 각자 광주와 장성에서 만세운동 을 주도했다. 송흥진은 이날 체포되었지만, 송주일은 3월 17일에 다시 만세운동을 선동하다가 체포 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 대목에서, 송주일이 3월 10일과 17일 사이에 무장을 다녀간 이유는 두 가지 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소룡리 만세운동으로 인해 잠시 일제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현실적인 필요가 있었다는 점, 그리고 둘째는 숭일학교 시절 존경하고 따랐던 도마리아 선교사의 무장리교회 건립을 축하해주려는 의도 아니었을까 싶다. <무장읍성 안에 있던 무장리교회(무장예배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