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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생의 전환점이 된 3.1운동 ∙ 47 <고창 최초로 세워진 신촌교회> 신촌교회가 흥덕군에 처음 설립된 후, 1905년에는 무장군 동음치면(현 고창군 공음면)에 구암 리교회 설립되었다. 이어서 통합 고창군이 된 후에는 1919년 무장면에 무장리교회(무장교회), 고 창읍에 고창읍교회(고창중앙교회)가 세워졌다. 그런데 문제는 신촌교회 이후 설립된 위의 세 교회 들이 전주 선교기지 소속이 아니라, 광주 선교기지에 소속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다소 설명이 필요하다. 당초 고창 지역은 전주 선교기지의 관할이었는데, 1904년 광주에 선교기지가 설립된 뒤에는 광주 쪽에서도 이 지역의 선교를 아울러 했다. 전주보다 광주가 고창군에서 거리가 더 가깝다는 사실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한편 1911년에는 전라도 지역 장로(長老)의 모임인 전라노회(全羅老會) 가 설립되었는데, 이 전라노회는 1917년에 전북노회와 전남노회로 분열되었다. 그런데 이때 고창군 의 교회들은 전주를 중심으로 한 전북노회를 등지고 광주 중심의 전남노회에 소속되었다. 참고로, 세월이 한참 지나서 고창군의 교회들은 1949년에 다시 전북노회로 전입되었으나, 1955년에는 정읍 군⋅고창군⋅부안군 지역이 전서노회(全西老會)로 분리 독립하였다. 1919년 3월에 설립된 무장리교회가 광주 선교기지 소속이었던 까닭은 남장로교 전라도 노회의 분열과 이에 따른 고창 교회들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였다. 도마리아(Mary Lucy Dodson, 1881~1973) 선교사는 미국 조지아 출신이다. 1912년, 32세의 미혼녀 도마리아는 20명의 선교사 와 함께 목포를 거쳐 광주에 부임한 후,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조선을 떠날 때까지 38년간 선 교에 헌신했다. 그녀의 선교활동 반경은 지리산 준령을 넘고, 고창과 장성, 나주와 화순에 이르기까 지 전라도 전 지역에 걸친 것이었다.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가 광주의 숭일수피아초등 학교 교장으로 보낸 7년을 포함해 수피아여학교에서 30년간 여성들을 깨우쳐 지도자로 양성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