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page

46 ∙ 송와 박영관 선생 사적 초창기 한국에 들어온 기독교는 선교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선교 대상지역을 분할함으로 써 교파간의 상호충돌을 피하고자 했다. 이 협정을 ‘Commity Agreements’라 하는데, 한국 교회에 서는 ‘예양협정(禮讓協定)’으로 번역해 사용한다. 이는 ‘교파가 다른 선교부간 상호 존중과 양보라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협정’이란 뜻이다. 이에 의해 충청도와 전라도는 미국 남장로회의 선교지역이 되 었고, 전라도 지역의 선교는 1893년 봄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사 레이놀즈의 한글선생이었던 정해원 이 전주로 파송되면서 시작되었다. 오늘날 전주서문교회가 호남 최초의 교회가 된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 예양협정에 따라 고창 지역도 당연히 남장로교회의 선교 대상지역이었다.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2009년에 발간된 고창군지(高敞郡誌) 하권의 제9편 종교 항목의 제4장 ‘기독교’ 관련 글을 볼 필요가 있다. 당시 남장로교 선교사들은 전라도 지역 선교를 위해 주요 거점지역을 설정했 는데, 이를 선교기지(Station)라고 했다. 이로써 1897년 전주와 군산 등 전북 지역의 선교기지를 시작으로 이듬해인 1898년에는 목포, 1904년에는 광주, 1912년에는 순천에 각각 선교기지가 설 립되었다. 지역적으로 볼 때, 무장군⋅고창군⋅흥덕군은 당연히 전주 선교기지에 포함되었다. <호남 최초, 전주 서문교회 예배당(이근복 그림)> 이렇듯 전주 선교기지의 영향으로 오늘날 통합 고창군에 최초로 설립된 교회는 1903년 신림면(당 시 흥덕군 지역)에 세워진 신촌교회이다. 이 교회의 설립자는 신식교육을 받은데다 자질이 똑똑하고 인자했던 송복겸 장로였다. 참고로, 송 장로의 큰딸 송경애는 3.1운동 당시 전주 기전여학교 학생으 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박은식은 그의 책 한국독립운동지혈 사에서 송경애 등 13인의 기전 결사대를 극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송경애의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열정은 당연히 아버지가 세운 신촌교회로부터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