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page

4. 인생의 전환점이 된 3.1운동 ∙ 39 로 추정된다. 거의 똑같은데 한글과 한자 사용만 약간 차이가 있는 두 버전의 가사 내용을 소개해보 면 다음과 같다. <독립가 1> 터졌고나 터졌고나 조선독립성(聲) 십 년을 참고 참아 이제 터졌네 삼천리 금수강산 이천만 민족 사랏고나 사랏고나 이 한소리에 (후렴) 만셰 만셰 독립만셰, 만셰 만셰 조선만만셰 <독립가 2> 터졌고나 터졌고나 朝鮮獨立의 聲 10년을 참고 참아 인제 터졌네 三千里 錦繡江山 二千萬民族 살앗고나 살앗고나 아 한소리에 (후렴) 萬歲 萬歲 獨立인 萬萬歲 萬萬歲 朝鮮獨立 萬萬歲 독립가의 가사는 위처럼 전해지지만, 막상 3.1운동 당시 군중들에게 배포된 독립가 원본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난 2019년 10월, 목포시에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해양유물전시관에서 목포의 3.1운동 관련 특별전시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전시에서는 당시에 유포된 독립가 원본이 공개 되었다. 이 원본은 현재 목포 정명여중 100주년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선교사 사택에서 1983년 건물 천장을 뜯어내던 중 발견된 문서더미에 있던 것이다. 이때 발견된 문서는 독립가를 비롯해서 3.1독립선언서⋅2.8독립선언서⋅조선독립광주신문⋅경고아이천만동포(警告我二千萬同胞) 등 모두 5종이다. 정명여학교는 목포 최초의 여학교로서,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의 설립자 유진 벨 선교사 와 함께 목포에서 활동했던 스트래퍼 선교사가 설립했다. 당시 목포는 광주보다 빠른 1898년에 미국 남장로교가 선교기지를 마련한 곳이었지만, 6년 뒤에 광주 선교기지가 설립되어 전남의 중심기지 역할을 하며 서로 매우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