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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생의 전환점이 된 3.1운동 ∙ 29 ② 송주일과 송흥진, 그리고 타마자 선교사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송주일(松柱一, 1892~ ?)의 일제 강점기 구속자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에 의하면, 그는 전남 고흥군 남양면 장담리 출신이다. 그는 광주로 유학을 가서 숭일학교를 졸업한 청년이자 송흥진의 제자였다. 송흥진(宋興眞, 1886~1960)은 전남 장성군 북하면 대악리가 고향으 로, 1911년 장로회 신자가 되어 3년간 북하면 대악리교회에 다녔다. 이후 1913년에 그는 미국 뉴저 지 출신의 남장로교 타마자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고, 1915년에 광주로 이사 가서 숭일학교 농감(農 監)으로 부임했다. <송흥진 선생과 숭일학교 학생들>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는 1908년 미국 남장로교 목사 유진 벨(Eugene Bell, 한국명 ‘배유지’) 이 설립한 학교들로서, 이들 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3.1운동 때부터 1930년대까지 전라남도 항일운 동에 앞장섰던 유서 깊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또한 이 두 학교는 1937년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를 당했다가 1945년 광복 이후에서야 복교를 했다. 전남지방의 만세시위는 3월 10일 광주만세운동을 시작으로 인근지역으로 확대 발전되었다. 당시 전남지방 만세시위 주도세력은 각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크게 5개로 유형화 할 수 있 다. 즉, ① 기독교계(광주, 목포, 강진, 장성 삼서면⋅장성읍, 고흥 등지) ② 유생층(순천, 광양, 구례, 장성 북이면 등지) ③ 청년과 학생층(영암읍, 곡성, 영광, 함평, 해남, 여수 등지) ④ 천도교계(장흥 등지) ⑤ 하부 행정기관 관리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담양, 영암 구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물론 이 가운데는 같은 지역이라 할지라도 시기에 따라 주도세력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기독교계가 운동을 주도한 ① 유형에 속하는 광주의 경우, 3월 10일 양림교회를 비롯 하여 기독교계 숭일학교와 수피아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