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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송와 박영관 선생 사적 <조선시대의 무장현⋅흥덕현⋅고창현 영역 ▶ 현재의 고창군> 이로써 길게는 신라시대 이래로 무려 1천여 년 동안 정체성을 유지해오던 고을들은 하루아침에 구읍(舊邑)으로 몰락하여 인근 고을의 부속 면(面)으로 편제되었다. 특히 무장이나 고부처럼 동학혁 명 시기부터 의병 봉기에 이르기까지 반일 무장투쟁이 활발했던 지역은 그 고을 규모와 무관하게, 여지없이 인근 고을로 흡수되었다. 규모와 위상에 있어 월등히 크고 높았던 무장과 흥덕이 고창에 편입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었다. 앞의 지도는 현재의 고창군 영역이 과거 조선 초기부터 1914년까지 이처럼 3개 현(縣)으로 나누 어져 있었음을 표시한 것이다. 이를 자세히 보면 본래의 고창현은 현재의 고창읍⋅아산면⋅고수면 등 3개 면의 영역에 지나지 않는다. 얼핏 보아도 무장이 가장 크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1420 년에 건립된 무장향교가 고창향교보다 100년이나 앞서고, 흥덕향교보다는 무려 200년이나 앞선다 는 것도 이런 정황을 알려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현재 고창군 지역 최초로 세워진 무장향교(1420년(세종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