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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송와 박영관 선생 사적 3) 고창 지역 최초, 무장 3.1운동의 배경 고창군 고창면의 읍내 3.1만세시위는 고창청년회가 주동이 되어 1919년 3월 21일에 시작되었다. 그런데 무장면의 시위는 이보다 1주일 가량이나 빠른 3월 15일에 발생하였다. 전국적인 민중봉기가 서울로부터 지방으로 전파되어 일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 지역의 행정중심지 가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순리이다. 그런데 어째서 고창군은 중심지인 고창읍보다 무장면 에서 1주일이나 먼저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일까. 당시 박영관의 행적과 관련되어, 이런 현상을 이해 하기 위해서는 우선 조선시대로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지방행정구역 변천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 글의 맨 앞머리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오늘날 고창군 지역은 조선 건국 이래로 1914년까지 고창현⋅무장현⋅흥덕현 등 3개 고을로 존재해왔다. 조선시대의 행정구역은 오늘날 광역에 해당되 는 8도(道)가 있었고, 중요 지역에만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정구역인 부(府)와 유수부(留守府)가 있었 다. 이를테면 전주⋅경주⋅평양⋅의주 같은 곳은 종2품의 부윤(府尹)을 두는 부에 해당되었고, 개성 ⋅강화⋅광주⋅수원 같은 곳은 정2품의 유수(留守)가 다스리는 유수부가 있었다. 대체로 옛 도읍지 이거나 국경 혹은 수도를 방위하는 전략적 요충지가 이런 예에 해당된다. 이런 예외적인 지역을 제 외하면, 나머지 지방행정구역은 모두 각 도(道)의 관찰사 지휘를 받는 하위 고을들로서, 그 고을의 호구(戶口)와 전결(田結), 기타 중요도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 조선 초기 경국대전(經國大典), 1485 에 기록된 이 고을들을 규모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형태 도 道 유수부/부 留守府/府 대도호부 大都護 府 목 牧 도호부 都護府 군 郡 현 縣 수령 관찰사 유수/부윤 부사 목사 부사 군수 현령, 현감 품계 종2품 정2/종2 정3 정3 종3 종4 종5, 종6 고을수 8 1/6 5 20 75 82 34, 141 <조선의 지방행정제도(경국대전, 1485)> 이상 전국 8도의 관할 아래 편제된 지방의 고을들은 1485년(성종 16) 기준으로 모두 364개가 된다. 이 고을들은 조선 중기와 후기를 거치며 부분적인 변화를 겪긴 했지만, 적어도 조선 말기까지 큰 틀은 변함이 없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같은 현(縣)이라도 고을의 중요도와 규모에 따라 종5품 현령이 파견되는 고을과 종6품 현감이 파견되는 고을로 구분이 되었다는 것인데, 고창지역의 세 고을은 모두 현감이 파견되는 최말단의 현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같은 현감 파견 고을이라 하 더라도, 조선시대의 무장현은 인근 고창현보다 호구수가 3배 이상이었고, 흥덕현도 고창현보다 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