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page

4. 인생의 전환점이 된 3.1운동 ∙ 21 켰는데,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이들 3인은 교회와 학교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후 흥덕학당은 1919년 4월에 오산고등보통학교로 재설립되는데, 이는 호남지방 최초의 사립 중등교육기관이었다 . 여기서 그 유명한 ‘정주의 오산학교, 고창의 하오산학교’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마스도미 장로와 설립 당시 오산학교 전경(고창군 부안면 오산리)> 1922년에 승부 장로는 이 학교를 고창군민에게 기증함으로써 이듬해 재단법인 고창고등보통학교 가 인가되었고, 1925년에는 군청소재지가 있는 고창읍에 새로 교사를 지어 이전했다. 이때 양승태 가 초대교장이 되었고, 오산교회를 맡았던 윤치병은 훗날 서울 안동교회 목사가 되었으며, 오산학교 기숙사 사감이었던 김영구는 서울 승동교회 목사가 되었다. 이밖에도 고창고등보통학교의 설립 후원에 중요한 역할을 한 단체로는 흥동장학계가 있다. 1914 년 흥덕 성내면의 지역 유지 100여 명으로 조직된 흥덕장학계는 3.1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조달했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전라도 지방 독립운동의 중심이 됐다. 또한 고창고등보통 학교 외에 성내보통학교 설립에도 계원들이 내놓은 자금이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흥동장학계는 민족교육 진흥과 장학사업을 펼쳐 반일 독립사상을 고취하였고, 1931년에는 성내면 양계리에 흥동 장학당을 세워 고창지역 항일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다. 현재 이곳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 어 있을 뿐만 아니라, 2014년 국가보훈처 A급 사적지 현충시설로도 지정됐다. <흥동장학당과 흥동장학당기적비(고창군 성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