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page

4. 인생의 전환점이 된 3.1운동 ∙ 19 김준희(金俊禧)의 장손으로 출생하여 18세까지 한문 사숙에서 수학한 후 1916년 이후 고창 항일민 족운동의 핵심적 인물로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신기업은 판소리의 중흥조 신재효(申在孝 , 1812~1884)의 증손이자 구한 말 장릉참봉(章陵參奉)을 지낸 신태환(申泰煥)의 장남으로 태어났는 데, 자산가로서 고창 항일민족운동의 재정적 후원자라는 막중한 임무를 감당해낸 숨은 공로자였다 . 이들은 모두 고창면 출신이자 사립양명보통학교 1기생이었다. 1916년 1월 16일, 이들 3인은 신기업의 사랑채에 모여 평생 동지로서 생사고락을 함께 할 것을 혈서로 결의하면서 이후의 고창 지역 항일민족운동과 청년운동 등의 구심점이 되었다. 이들이 중심 이 되어 오진탁(吳璡鐸), 은성익(殷成益), 윤병묵(尹炳黙) 등 30여 명의 우국 청년들을 규합하여 핵심 요원을 양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청년들의 정신과 행동에 큰 영향을 준 지도자는 사회운동가이자 3.1운동 당시 천도교 이리교구장으로 있으면서 의거에 앞장섰던 이중열(李仲悅, 1869~1928)이었 다. 양명학교 설립자 은성채는 이중열과 친교가 있었기에, 고창청년회 창립 당시 고창을 방문했다가 은성채의 부탁으로 이들 3인을 지도하게 되었다. <전북 이리 출신 이중열 선생 초상> 그는 고창 지역 청년지도자들에게 “지기(至氣)가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원리를 발전시켜 나아갈 때 아무리 약소민족일지라도 민족론을 바탕으로 정진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고 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항일 저항의식을 일깨웠다. 또한 3.1운동 때에는 독립선언문을 호남지방에 붙이거나 배부하는 등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1919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중열에게 영향을 받은 은규선과 김승옥은 선각자들을 찾아다니고 동지들을 규합하는 한편으로, 같은 고향 출신 일본 유학생들인 김성수(金性洙)⋅김연수(金年洙) 형제와 백관수(白寬洙), 백남운(白 南雲), 김수학(金秀學) 등 당대의 저명한 인사들과 연락하면서 세계정세를 살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