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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생의 전환점이 된 3.1운동 ∙ 15 중국 및 만몽의 이권을 쟁취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에 일본은 1915년 중국 원세개(遠世 凱) 정부에 중국의 주권을 현저하게 침해하는 내용의 21개조 요구를 강요하였다. 일본은 중국의 거 센 항일운동에도 불구하고, 1916년에는 제4차 러일협약을 맺어 중국이 다른 열강의 지배 하에 놓이 지 않도록 했고, 동시에 중국 군벌들에게 거액의 차관을 제공하여 중국 내 손문 등 혁명파를 압박하 여 권익을 지키고자 했다. 이런 와중에 러시아에서는 1917년 볼셰비키의 혁명으로 사회주의정권이 출현하였고, 이는 자본 주의 열강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연합국 측에서는 혁명이 자국에 파급될 것을 두려워하여 소비에 트정권에 간섭하려고 하였다. 이에 연합국은 시베리아에서 고립된 체코 군단을 구원한다는 명목으로 1918년 시베리아에 출병했는데, 일본도 이틈에 만주의 배후지역을 확보하려는 야욕에서 대규모 병 력을 시베리아로 파견하였다. <육해공 협공으로 시베리아 적군을 소탕한다는 일본의 선전포스터> 일본은 결국 소비에트 혁명세력의 저항으로 인해 당초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1922년까지 계속해서 시베리아에 주둔하였다. 이처럼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에 적극 참전함으로써 자국의 경제 불황과 재정위기를 한꺼번에 타개해나갔다. 면직물 등의 일본 상품은 유럽 상품을 대신해서 아시아 시장을 잠식했고, 전쟁으로 인해 선박 부족사태가 일어나면서 해운업, 조선업이 활기를 띠어 일본은 세계 제3위의 해운국으로 발돋움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결국 1918년 11월에 독일 중심의 동맹국 측 패배로 종전되었고, 승전국인 연 합국 측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질서를 회복해야 하는 책무를 갖게 되었다. 이에 각국 대표들은 프랑스 파리에 모여 평화회의를 장기간 열었는데, 이것이 이른바 파리강화회의이다. 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