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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 송와 박영관 선생 사적 교육도시로 부상 이리시는 교육도시이기도 하다. 원불교 재단으로 세워진 원광대학교(圓光大學校)는 15개 단과대학에 약 2만 명의 인원을 포용하고 있다. 원광대학 부속 병원의 입원실은 5백 베드인 데 만원이라고 하니 이 지역의 생활 수준을 짐작케 한다. 오늘의 이리시는 주위 여러 면을 병합하여 인구 20만 명으로 증가하였는데 하루의 유동인구가 5만 명이라고 하니 이리시가 농산물 산업, 또 교통의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저녁에 과거 일본인들이 흥청거렸던 「영정(榮町)」인 오늘의 중앙동 어느 식당에 들렀다. 맥주 5병을 청하면 안주가 따라 나온다기에 그리했더니 겉치레가 아닌 육회, 건천엽, 조개, 낙지등이 나오는데, 가지수를 세다가 그만두고 매운탕 하나를 더 시키고 저녁을 들었다. 주위를 살피니 모두 체구가 크고 믿음직한 사람뿐이다. 동석한 이 고장 출신인 우석대학 김광중(金光重) 교수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연구원인 김선기(金善基) 군은 여러 곳에서 모인 사람이라고 하면서 과거에 이 지방에서는 이리깡패에 당할 자가 없었다고 한다. 오늘의 이리시는 신흥도시이고 전주문화권에 속한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고려· 신라, 그리고 이리시 주변에 꽃피웠던 백제시대 금마(金馬)문화유산의 영향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부질없는 일만은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