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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 송와 박영관 선생 사적 이로 시작했다. 이미 전 재산을 군자금으로 헌납해서 출옥 후에 그가 가진 재산이라곤 불편한 몸뚱 어리밖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신혼생활 조금 지난 1938년 경, 그는 마치 고향이라 도 찾아오듯 이곳 두월리 947번지에 다시 제대로 터를 잡고 정착해서 나머지 반평생을 살았다. 이곳은 하백, 즉 아래미라는 곳인데, 본래 숲이 우거진 깊은 산속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사람들을 동원해 직접 집을 짓고 주변을 개간하여 천수답도 만들었다. 지금은 개간을 해서 집터 앞쪽이 넓게 트였지만, 본래 조금만 떨어진 곳에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아늑한 둥지같아서 풍수를 아무리 모르 는 사람이라도 한눈에 명당자리라는 느낌이 듬직한 곳이다. 집 뒤쪽으로는 지금도 대나무밭이 운치 있게 둘러져 있고, 오솔길 따라 잠시 올라가면 동북방향으로 약 30여 킬로미터 떨어진 담양의 추월 산 봉우리가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온다. 현재 후손들은 이곳 옛집을 복원하려 애쓰고 있으나, 다른 문중 소유의 땅이라 협의가 쉽지 않다.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으로 선생의 고귀한 행적이 지역사회의 귀감으로 되살아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박영관이 음식점을 경영했던 장성군 삼서면 두월리 147-5번지의 은신처 터> 다음으로 박영관이 머물렀던 곳은 그가 1928년 체포 전까지 음식점을 경영하며 위장생활을 했던 두월리 147-5번지의 소갈마을 입구이다. 947번지에서 동남쪽 직선거리로 약 1km 남짓 떨어진 이 곳은 현재 농지로 바뀌어 과거 집터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오로지 생존해 있는 후손 들의 기억으로밖에 남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박영관의 세 번째 아지트는 두월리 378-4번지의 위장 거주지로서, 흔히 도산댁이라고 불렀던 곳 이다. 이곳은 위 소갈마을로 가는 중간에 위치해 있는데, 두월리의 중심가 조금 못 미친 곳이다. 두 월리 본가에서 약 600m 정도밖에 안 되는 곳으로, 도보로 이동하기 편리한 곳에 있는 외딴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