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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박영관의 출소 이후 행적 ∙ 125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최종판결문에 적힌 그의 직업은 놀랍게도 ‘음식점업’인데, 다른 동지들의 직업이 대부분 농업이고 간혹 무직이었음을 감안하면 몹시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음식점을 실제 로 운영했다기보다는 이동과 은폐를 위한 용도로서의 위장 간판 쯤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 그렇다면 그의 주거지이자 은신처에 해당되는 곳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옛집 사진(상)과 화가인 장손부(長孫婦)가 사진을 모사한 그림(하)> 우선 두월리 947번지는 체포 이전부터 출옥 이후까지 평생토록 그가 장성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곳이다. 그는 출옥 직후 아지트 중 한곳이었던 이곳 오막살이집에 거처를 정했으나 일제의 온갖 간 섭과 감시를 받으며 생활했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곳에서 홀로 지내던 그는 1937년에 마 흔이 거의 다 되어서야 혼인을 했는데, 신혼살림은 처갓집 옆 남의 집 초막에서 접방살이, 즉 셋방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