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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박영관 출생기의 전북 무장 지역 및 시대적 배경 ∙ 7 <남한대토벌작전으로 체포된 호남의 의병장들(대구감옥, 1909)> 이로써 전라도 지역 민족운동의 주도세력이 사실상 거의 제거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제는 의병의 재발을 막기 위해 감시망을 확충함으로써 항일투쟁이 조직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조건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라도에 대한 일제의 경제적 침탈이 가속화되었고, 마침내 1910년 8월 29일, 대한 제국은 일제에 완전히 합병되어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일제강점기의 애국지사들은 해외로 나가서 무장 항일투쟁을 전개하거나, 혹은 국내에서 각 지역 별로 애국계몽에 바탕을 둔 항일운동을 전개해나가야 했다. 그런데 무장⋅고창⋅흥덕 지역은 동학 농민혁명과 의병 시대를 거치며 1만 여 명 이상의 지사들이 희생되어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에 1914년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으로 세 개 군이 고창으로 통합될 때까지 이 지역에서는 청년 중심의 조직들이 결성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에서도 고창에서는 1907년 은성 채에 의해 3년제인 사립 양명학교가, 무장에서는 1910년 동명보통학교와 무창학교가 각각 설립되 었다. 이들 학교를 통해 10여 년간 성장한 청년들은 선배들의 가열찬 항쟁과 애국정신을 이어받아 3.1만세운동의 주역이 되었고, 계속해서 1920년대 통합 고창군 내 지역별 청년회를 결성하여 항일 정신을 배양해나갔다. 이상, 박영관이 태어날 무렵의 전북 무장은 동학농민군의 거센 혁명 물결이 폭풍처럼 산하를 휩쓸 고 지나갔으며, 선생이 자라나서 철들 즈음에는 비록 일제강점의 식민지 치하일지언정 무장 출신 항일 의병들의 핏빛 투쟁과 무용담이 채 가시지 않고 언덕과 들판에 생생한 메아리로 남아 있던 시 절이었다. 이런 가운데 십대 청소년기를 보낸 선생은 항일 구국과 자주독립에 대한 의지가 누구보다 투철했고, 마침내 21세 되던 해 3.1만세운동의 호기를 맞이하여 분연히 앞장서서 독립만세를 외치 며 지역민들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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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생의 전환점이 된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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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1운동 발생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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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1운동 발생의 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