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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전북폭발탄사건의 배경과 전개 및 영향 ∙ 101 터 대대적으로 검거되었다. 처음에 경찰들은 이 사건의 실체를 알지 못해 언론에서도 그저 ‘모 중대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이윽고 김제에서 동지들이 체포되고 장성에서 박영관과 오석완 역시 압송되어 오자, 이 중대사건은 드디어 대한통의부 단원들이 중심이 된 ‘이리동양척식회사지점 습격 계획’이라는 구체적 실체가 드러났다. 최초 보도가 된 지 4일이 지난 1928년 6월 9일자 동아일보 기사 중 일부를 다시 살펴보자. 참고로 이 기사는 앞서 박영관의 목포형무소 사건을 다루며 이미 한번 인용한 바 있다. 작년 봄 이래 암중비약(暗中飛躍) 이리동척 습격계획 작년 봄 이래로 상해 가(假)정부 연락, 권총⋅탄환을 수입해 계획 중에 발각 전북 중대사건 진상 전북 이리를 중심으로 김제와 전주 일대를 비롯해 전남 광주까지 확대되어 다수의 피의자를 검 거하게 된 비밀단체 사건은 오히려 각 방면으로 대수색을 계속하며 비밀을 엄수하므로, 그 내용 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본지가 탐문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작년 봄부터 상해임시정 부와 연락을 취하여 다액의 군자금과 무기 탄약 등의 공급을 받았다. 그래서 가장 먼저 ‘이리동 양척식회사 지점을 습격’하여 경찰의 주력이 그곳으로 몰린 틈을 타서 각 부호의 집을 엄습한 후 많은 군자금을 모집하려고 계획하였다. 그런데 이 단체의 두목인 오오득(吳五得)과 김종철(金 宗喆) 사이에 내홍이 생겨, 그로 인해 경찰이 탐문하게 됨으로써 검거를 개시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들 중에 박모(朴某)는 일찍이 군자금을 보충하고자 지폐 위조를 하다가 목포형무소에서 복역했던 사람으로, 그 범위와 계획이 자못 컸던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지난 6월 6일에 는 다시 이리경찰서원이 전남 모 방면으로 출동하여 권총 한자루와 실탄 수십발을 압수하는 동 시에 두 사람의 혐의자까지 체포해 왔다고 한다. (동아일보, 1928. 6. 9) 제목만 보아도 섬짓한 이 기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찰들이 본 사건을 최초로 탐문하게 된 계 기는 오오득과 김종철 사이의 갈등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기사는 아직 언론 측에서 도 자세한 정황을 알지 못해 다소 부정확한 내용을 추측성으로 보도한 측면도 있다. 즉 오오득과 김종철은 단체의 두목이 아닐뿐더러, 이후 다시 상세하게 보도되는 6월 15일자 기사에서는 이 두 사람의 내홍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위 기사에서 중요한 것은, 모종의 비밀단체가 상해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해 무기와 탄약을 준비하고 이리 동척을 습격하려 했다는 것이고, 이 핵심에 목포형무소 복역 전과가 있던 박모(朴某), 즉 박영관이 있었는데, 권총과 실탄을 지닌 박영관과 오석완 두 사람이 6월 6일에 체포되었다는 점 이다. 일제 경찰로서는 가뜩이나 김창숙-나석주 사건이 다시 부각되며 민감해져 있던 시점이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