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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남지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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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헌, 김홍렬, 김교영, 구희서의 3.1운동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 지방으로 번지자 광주군에서도 3월 23일부터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26일 동부면 교산리 출신 이대헌은 이장 최창근으로부터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음을 듣고, 주민 수십명과 함께 면사무소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를 일으켰다. 풍산리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김홍렬도 26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인 27일 오전 3시까지 20명의 주민들과 산으로 올라가 봉화를 올리며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동부면 망월리 이장 김교영도 27일 같은 마을 김용문을 통해 사람들을 모아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3월 27일 서부면 김일리에 사는 구희서는 주민40여명을 모아 서부면사무소와 상일리 헌병주재소 앞까지 시위행진을 벌였다. 시위대는 헌병주재소로 행진하는 과정에서 동부면과 서부면, 구천면(길리) 주민들이 합세하여 1,000여명으로 증가하였으며, 돌을 던지는 등 시위가 격렬해지마 일제 헌병이 총격을 가해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대헌, 김홍렬, 김교영, 구희서 등 15명의 인원이 체포되었다. 이대헌, 김홍렬, 김교영, 구희서는 보안법 위반으로 각각 징역 2년,1년,1년 6월, 9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이대헌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김교영은 1994년 건국훈장 애족장, 구희서는 1992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