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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 추모사(김포검단정금모 유족회장) 追 慕 辭 아버지의 4남매중 막내 아들이 당신의 아내 배 속에 한 달 후면 태어날 자식이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르신 체 당신은 억울하게 총살로의 학살을 당하신 冤魂이 떠도는 이 자리에 서 72년이란 긴 세월이 지나서야 이제 찾아와 미약하나마 조그만 冤魂碑라도 세워놓고 이곳에서 함께 억울하게 학살되신 모든 魂靈님 들게 억울한 죽엄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명예회복이라도 하여 드리고 싶어 오늘 무거운 마음으로 이제나마 위로의 白碑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홀어머니와 29살의 아내와 9살, 5살의 두 아들과 2살의 딸 배 속의 만삭의 태어날 자식 을 남겨 두셨던 한 가정의 가장은 6.25 한국전쟁이 발발되고 3일 만에 이곳 김포 반도가 적군에게 점령이 되어 점령자들로부터의 통치가 시작되었고 이승만대통령과 정부는 예고 도 없는 수도서울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게 되니 국가로부터 보호조차 받을 수가 없었던 상황 속에서 이곳 김포반도의 군민들은 미처 피난을 할 겨를도 없이 적군의 점령지에 남 겨져 전쟁의 참혹한 혼란 속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생사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점령군들 의 점령 정책에 의하여 양민들은 자기의 意志와는 無關하게 그들의 통치로의 생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와 고통이었음이 당연하였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