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page

- 36 - 군사반란 사건이다. 유혈충돌이 수반된 하극상 사건이었다.​ 12·12군사반란·12·12 하극상·12·12쿠데타·12·12쿠데타적사건 등이라고도 한다. 신군부 세력은 이 사건 으로 군 내부의 주도권을 장악한 뒤 1980 년의 5·17사건을 일으켜 새로운 권력을 획득하였다. 5·17사건은 명백한 정치적 쿠데타로 간주될 수 있지만 12·12사건 당 시에는 신군부의 정권장악 목표가 아직 명백하게 표출되지 않았으므로 12·12군사 반란은 예비 쿠데타로 간주되기도 한다. ​ 1979년 10·26사태로 박정희(朴正熙) 대 통령이 살해된 뒤 최규하 과도정부는 제 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 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대장)을 계엄사령 관에 임명하였다. ​ 정승화는 군 장악을 위해 윤성민(尹誠 敏, 참모차장), 장태완(張泰玩. 수경사령 관), 정병주(鄭炳周, 특전사령관) 등을 중 용하여 지휘계통을 개편하였으며, 10·26사 태에 직접 연루되었던 중앙정보부와 대통 령 경호실을 축소 개편하였다. 이로써 정승화는 군에 대한 지휘체계를 확보하고 자신이 정치 일정을 이끌어 가 는 데 핵심역할을 담당하려고 하였다. 그 런데 군부 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가 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