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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 임자의 명령으로 광복동 파출소로 인계되었고, 파출소에서 집으로 귀가 했다가 급성 복막염으로 실신하여 가족들에 의해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당시 김○○을 수술한 부산 복음병원 외과 과장 장○○는 몸 내부적인 원인이 아닌 외상으로 인한 복막염, 그것도 군인에 의해 맞아 발생한 복막염 환자라는 점 때문에 충격적인 일로 기억하고 있다고 했 으며, 수술 전날에도 군인들이 부녀자를 총 개머리판으로 치는 등 폭행을 가하는 장면을 봤다고 증언했다. 김○○ 이외에 군인에게 폭행당한 다른 환자들이 한두 명 입원했던 적 도 있다고 했다. 금은방 직원 전○○(당시 29세)은 시위에 참여하던 도중 시위대가 계엄군을 향해 투석 을 하자 계엄군들이 시위대에게 달려들어 총 개머리판으로 무자비하게 구타를 했으며, 그때 군용차량 뒤편으로 피신하다가 6~7명의 계엄군에게 포위당한 후 총 개머리판에 머리, 얼굴, 팔, 다리 등 전신을 구타당하여 실신하였다. 그 뒤 두개골 함몰분쇄골절로 인해 한독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었으나 한독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하여 인근에 있는 한○○ 신경외과 의원으로 재차 후송되어 대수술을 받았다. 골절된 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한 지 한 달 뒤에도 인공뼈를 심는 두개골 성형술 역시 시행하였다. 부산 소재 동광섬유 직원 신○○(당시 37세)도 1979. 10. 18. 부산시 남포동에서 시위 에 참여하였다가, 시청 부근에서 진압군에게 곤봉과 총 개머리판으로 머리 등을 구타당 하여 뇌 손상, 뇌경막 손상의 상해를 입었다. 한국방송공사에서 제작한 "KBS영상실록" 2005. 9. 25. 방송분에는 “베레모를 쓰고 집 총을 한 군인이 군용차량으로 이동하는 영상, 한 군인이 총 개머리판으로 적색 상의를 입은 청년을 구타하고 옆에 있던 군인들도 함께 발로 차는 모습이 촬영되어 있고 이는 ”외신기자가 기록한 18일 부산의 모습이다.”고 설명하고 있다. 마산경찰서 전투경찰(일경) 서○○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서 “나는 시위대를 구타한 사실은 없지만 낙하산 마크가 부착된 군인과 일반 군인들이 마산 시내에서 돌아다니면서 시민들에게 불심검문을 요구하고 이에 불응하여 도망가는 시민들을 잡아서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장면을 본 기억은 있다. 당시 그 장면을 보고 무서워서 불안했던 기억이 지금 도 선명하다.”고 진술하였다. 이런 무자비한 진압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망자까지 나왔다. 사망자 신원은 마산 완월동에 살던 건설노무자 유치준(당시 51세)씨로 그는마산에서 항쟁이 발 생한 10월 18일에 노무 일을 나갔다가 죽은 채로 발견됐다. 10월 19일에 작성된 마산경 찰의 「마산 경남대 소요사건 1차 발생 보고서」에서는 "변사자 발생, 목림여관 앞 도로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