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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 마산의 시위는 한층 더 격화되면서 민주공화당의 당사, 파출소, 방송국이 불타고 파괴 되었다. 이에 인근의 창원,진해시,함안 등지에서 경찰 병력이 넘어오고 2개 중대의 군인 까지 투입되어 시위대를 진압하였다. 경남대학교는 18일부터 무기한 휴교에 들어갔으나 19일 학생들과 시민들의 경찰 차량 방화, 파출소·언론기관·관공서가 불타는 등 공권력에 대한 저항이 계속되었다. 이 시위는 대학생과 일부 고교생은 물론, 노동자, 폭력배, 구두닦이, 접객업소 종업원 등 도시 하층민들이 대거 가세하여 경찰, 군인과 충돌하면서 시위 강도는 한층 격해지고 있 었다. 그리하여 마산의 항쟁이 수출 자유 지역 노동자와 고교생까지 합세하여 더욱 확산 될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10월 20일 0시를 기해 마산과 창원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하였 다. 육군과 경찰 뿐 아니라, 해군의 주요 기지와 부대들이 위치한 진해 지역에선 해군 육상 지원부대 근무자들까지 유사시를 대비해 시위 진압 등의 훈련을 급하게 하기도 했다. 해사에서 근무하던 어느 예비역 수병은 전역이 코앞이던 와중에 난데없이 샘브레이와 당가리 대신 잔뜩 실어와 던져준 민무늬 작업복 입고 힘든 시위 진압 훈련을 며칠 동안 하느라고 날벼락을 맞았다 고 증언했다.당시 부산, 마산에는 육군 특전사 예하 제1공수특전여단과 제3공수특전여단, 해군 제1해병사단[의 제7연대와 2연대의 일부 병력이 계엄군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