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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전날과 똑같은 양상으로 시위가 펼쳐졌다. 어제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듯 경찰 은 최루탄과 곤봉을 마구잡이로 썼지만, 시위대는 끈질기게 저항했다. 이날의 시위로 중 구, 서구, 동구 지역 내의 거의 모든 파출소, 경찰서, 공공기관이 공격당했다. 이틀 간의 격렬한 시위로 경찰 차량 6대가 전소되고 12대가 파손되었으며 21개소의 파출소가 불타거나 파괴되었다. 언론사와 경남도청도 공격당했고, TBC-TV 취재 차량이 투석당하고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경찰은 시위를 제대로 진압하지 못하였다. 한편 당시 부산에서 집계한 자료에는 부상자는 16일 하루 동안에만 학생 5명, 일반 시 민 10명, 경찰 95명 등 총 110명으로서 그 가운데 중상자는 18명이었다. 그러나 시민들 로선 자진 신고를 기피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감안할 때 실제 피해는 그보다 훨 씬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고문 피해자들도 양산되었던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부산의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서 박정희 정권은 18일 새벽 0시를 기해 이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부산에 육군특전사의 2,000여 명의 병력이 투입되었지만 시위는 오히려 부산을 넘어서 마산까지 번졌다. 10월 18일경남대학교 학생 1,000여 명이 기동 경찰 300여 명과 대치 하다 투석전을 벌였고 3·15 의거탑에서 1,000여 명이스크럼을 짜서 유신 철폐와 독재 타 도 및 언론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는 등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 다. 그날 저녁부터는 학생들과 시민 수천 명이 시내 중심가를 메우고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는 대규모 군중 시위를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