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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거리와 담배 물수건 등을 던져주며 열렬히 호응하고 시위대를 격려했다. 퇴근 시간에 가 까운 오후 6시부터는 회사원, 노동자, 상인들도 시위에 합류했다. 저녁 7시 5~7만여 명의 인파가 부영극장 앞 간선 도로를 꽉 메운 채 시위의 물결을 이루었다. 시위의 주역인 대학생들 무리에 퇴근길의 회사원과 재수생, 교복 입은 고등학생, 심지 어 상인과 노동자, 접객업 소 종업원들까지 가세하였 다. 이 시점부터 시위는 단 순한 학생시위를 넘어 도 시 하층민까지 포괄하는 민중항쟁의 성격을 띠었다. 시민들은 "유신철폐", "독 재타도", "언론자유", "김영 삼 총재 제명 철회" 등을 외치며 부산 시내를 쏘다 녔다. 밤이 깊을수록 시위 는 민중의 격렬한 저항으 로 바뀌어갔다. 시위대는 새벽까지 부산 시내 곳곳 을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파출소마다 공격하여 남포, 부평, 보수, 중앙 등 총 11 곳의 파출소가 파괴되었고, 파출소마다 걸려 있던 박 정희 사진도 철거되어 태 워졌다. 시위대는 이를 보며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으며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10월 17일, 이날부터 부산대는 임시휴교에 들어갔지만 시위는 멈추지 않았다. 부산대 교정에서 다시금 수천 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다가 시내로 진출했다. 저녁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