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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 - ▲서재필, 김규식, 여운형 사진(1947) 서재필이 귀국하자 마중 나온 김규식, 여운형과 함께 차에서 촬영한 사진 (가운데가 서재필, 양 옆이 각각 김규식과 여운형) 일본 대표의 온갖 방해 물리치고 하와이 태평양문제조사회에 참가 이 같은 독립 외교활동은 1925년 열린 태평양회의에서도 이루어졌다. 이 회의는 태평 양지역 여러 국가와 국민의 상호관계개선을 목적으로 하여, 이들 국민의 국내 및 국제적 사정을 조사 연구하는 사설 단체인 태평양문제조사회가 처음으로 개최한 국제회의였다. 이 회의가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개최되자 선생은 일본 대표의 갖은 방해공작을 물리치고 한국 대표로 참석하였다. 여기에서 일제의 한국 침략과 만행을 폭로 규탄하고, ‘한국문제 는 일본과의 문제만이 아니라 동양의 문제요, 전세계 인류의 문제다. 우리는 세계 어느 구석에서도 정의가 무시되고 인도가 유린됨을 묵인할 수 없다.’고 하면서 한국 독립의 필 요성을 역설하였다. 이와 같이 1919년 3․1운동을 전후하여 1920년대 중반까지 계속된 선생의 독립 외교활 동은 3․1운동으로 표출된 국내 독립운동의 정신을 선전 외교활동을 통해 미주 한인 사회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까지 지속시킴으로써 국제적으로 친한여론(親韓輿論)을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더욱이 이러한 활동이 당파(黨派)를 조성하지 않고 미주 한인사회의 단합을 바탕으로 전개되었다는 사실은 선생의 인품과 지도력을 돋보이게 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