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page

- 177 - 행진하면서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표출 선전한 뒤, 선생의 사회로 미국 독립관에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미국인이여, 한국의 독립을 도와라.” 미국 유력인사들을 ‘한 국친우회’에 가입시켜 이와 같은 활동으로 선생은 임시정부의 대미외교 고문으로 임명되 었고, 그에 따라 4월 25일 필라델피아의 대한인국민회 외교통신부는 임시정부 산하의 대 한민국 통신부로 변경되었다. 선생의 책임 아래 운영된 대한민국 통신부는, 한국의 소식 을 구미 각국에 선전하며 한국 독립에 공감하는 친한미국인(親韓美國人)을 모아서 한국 친우회를 조직하고 그로 하여금 한국 독립운동에 관한 외교 사업을 협찬하게 하는데 그 일차적 목적이 있었다. 아울러 한국 문제를 강연하는 사람들의 연설문 작성과 재료를 공 급하며 영문 출판과 선전문 제작에 협조하여 한국 선전에 노력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우선 1919년 5월 톰킨스 (Tomkins) 목사와 협력하여 한국친우회 (The League of Friend of Korea)를 조 직하고, 여기에 미 상원의원들과 저명인사 들을 회원으로 가입시켜 한국의 독립을 위 한 지원활동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그리하 여 이들의 노력으로 미 상원과 하원에서 한국문제가 토의되고, <한국 독립 찬조 결 의안>이 제안되기도 하였다. 아울러 1919 년 8월부터 1921년 12월 재정난으로 중단 될 때까지 <한국평론(Korea Review)>이라 는 월간 잡지를 발행하여 한국 독립을 위 한 대중적 선전활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 였다. <한국평론(Korea Review)>은 당시 미국민을 상대로 한 유일한 월간 잡지로서 다른 해외 지역에서의 한인들이 발간하던 선전간행물 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으로 평가되며, 일본의 대미역선전(對美逆宣傳)을 막는데 힘쓴 잡지였다. 이 잡지의 주된 논점은 일본의 한국식 민지화는 불법적으로 이루어졌고 한국에서의 일본의 개혁정책은 순전히 허구일뿐 아니라 기만적이라는 것, 한국은 오랜 기간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누려왔고, 현재 충분히 그러 한 자치능력과 민족정신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라는 것 등 미국민에게 한국의 진실을 알 리는데 주력하였다. ▲서재필의 부인인 뮤리얼 암스트롱의 중년기 사진.